NOTE FOR AHN(安), GALLERY 175, SEOUL, SOUTH KOREA, 2019
Exhibition Note for AHN (安) was a two-person exhibition I organized with Ahn Jaeyoung, which began from the question of whether an individual could escape from being possessed — one of the mysterious symptoms containing elements of superstition from Korea. The exhibition, tracks how images attained from one’s superstitious beliefs relate to mythical and religious images, then recombines and deconstructs them. Under our collaboration lies the hope to contact invisible but clearly existing sensual phenomena, and to together overcome anxieties, interpreting phenomena as the destiny of artist/mediator.
Paying attention to the number of tattoos on Ahn Jaeyoung‘s body (the Chinese character 安, a blue diamond, an arrow, a red-haired Anne, Piglet, Mickey Mouse, and an epitaph of Nikos Kazantzakis), I interpreted each image as a charm to ward off Ahn’s anxieties. I then, researched mythical and religious imagery in order to strengthen the shamanistic narrative. Observing that the number 12 frequently works as important motive in the myths of many different cultures, I set Ahn Jaeyoung‘s birthday, December 12, as a central axis and tried to discover the references to god-related signs from the number 12. Combining the symbolic world of the image, language, color, and numbers from ancient myths from twelve animals that guards tombs, I created a chart for a system of faith and proposed a psychological space for a praying man, just like the secret connotation of the ancient character, 安
NOTE FOR AHN(安), GALLERY 175, SEOUL, SOUTH KOREA, 2019
Exhibition Note for AHN (安) was a two-person exhibition I organized with Ahn Jaeyoung, which began from the question of whether an individual could escape from being possessed — one of the mysterious symptoms containing elements of superstition from Korea. The exhibition, tracks how images attained from one’s superstitious beliefs relate to mythical and religious images, then recombines and deconstructs them. Under our collaboration lies the hope to contact invisible but clearly existing sensual phenomena, and to together overcome anxieties, interpreting phenomena as the destiny of artist/mediator.
Paying attention to the number of tattoos on Ahn Jaeyoung‘s body (the Chinese character 安, a blue diamond, an arrow, a red-haired Anne, Piglet, Mickey Mouse, and an epitaph of Nikos Kazantzakis), I interpreted each image as a charm to ward off Ahn’s anxieties. I then, researched mythical and religious imagery in order to strengthen the shamanistic narrative. Observing that the number 12 frequently works as important motive in the myths of many different cultures, I set Ahn Jaeyoung‘s birthday, December 12, as a central axis and tried to discover the references to god-related signs from the number 12. Combining the symbolic world of the image, language, color, and numbers from ancient myths from twelve animals that guards tombs, I created a chart for a system of faith and proposed a psychological space for a praying man, just like the secret connotation of the ancient character, 安
Installation view of Jan van eyck academie openstudios 2021 Still cut, The geometry of the hunter, Single channel video, 2021
공-영혼발생(symanimagenesis)의 예술
최유미
소보람 작가는 충실한 “사자의 대변인”1) 이다. 사자의 대변인이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더 응답-가능한 삶과 죽음이 가능하도록 죽은 자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자이다. 그의 작품들은 작가가 불러낸 죽은 자의 영혼과 “함께-되기”를 통해 태어난 것들이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런 방식의 생성을 공-영혼발생(symanimagenesis)이라 불렀다. 공생발생(symbiogenesis)이 살아있는 생명체들 사이의 이종혼효적 생성이라면 공-영혼발생은 죽은 자의 영혼이 어떤 생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작가가 불러들인 죽은 자의 영혼은 인간이 아니라 수년 전에 작가에게 로드킬된 작은 사슴이다. 고라니라고도 불리는 이 사슴은 한반도에서는 제법 흔한 야생동물로 농작물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해수로 지정되었고, 허가된 기간에는 사냥을 할 수 있으며, 교통사고를 가장 많이 당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나의 사슴에게>에서 작가는 이 고라니종의 삶과 죽음의 궤적을 지도로 그려내고, 그 죽음들을 기억하고 애도한다. 애도란 상실과 함께 사는 것이고 그 상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위도와 경도가 표시된 지도에는 이들의 현상태가 “취약한”에서부터 “멸절”에 이르기까지 7가지의 색깔의 픽셀로 표시된다. “나의 사슴”이라는 말은 영어권 사람들이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인 “소중한 타자(significant other)”처럼 들린다. 해러웨이는 일상어인 이 말을 서로를 최선을 다해 길들여온 가축과 인간의 중요한 관계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한다.2) 그러나 작가에게 그 사슴은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소중한 타자”가 아니었다. 그저 도로표지판에서 차량파손의 위험을 알리는 별 관련이 없는 야생동물쯤이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슴이 작가에게 소중한 “그”가 된 것은 그를 죽이고 나서이다. 이 기묘한 조우에는 전국토가 오직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재편된 토목산업의 역사, 해수구제라는 명목으로 한반도의 대형 포식자들이 거의 멸절시킨 식민지의 역사, 도시화의 역사, 무른 흙에 알맞게 진화한 사슴 발굽과 포식자를 만났을 때의 진화적인 대처행동 같은 여러 갈래의 역사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작가의 기억하기, 애도하기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 이 사슴과(科) 동물의 삶과 죽음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역사들을 찾아 나서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슴과의 동물이 멸절에 이른 것은 가죽을 위한 무차별적인 사냥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동물의 가죽을 이용해 온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해당 동물의 계속성이 중단된 것은 2~3백 년 이내의 일이다.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환을 위한 상품이 되고 나서 부터다. 이는 데보라 로즈가 말한 “이중의 죽음”이다.3) 이중의 죽음이란 특정 개체만아 아니라 그 종의 계속성을 죽이는 것이자,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나의 사슴에게>의 지도에는 이중의 죽음을 의미하는 검정색 픽셀이 화면의 대부분을 채운다. 작가는 상실을 애통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기억하기를 더 밀어붙인다. 이 초식동물들의 벗겨진 가죽을 다시 만드는 방식으로, 작가는 “나의 사슴”을 기억한다.
<스물네 개의 너의 몸에서>의 가죽들은 40여종의 차와 당을 먹은 박테리아와 효모가 만든 스코비(SCOBY)4) 를 건조한 것이다. 스코비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 가죽은 박테리아와 곰팡이 그리고 대기의 합작품이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세월을 겪어왔는지에 따라 가죽에는 상이한 색깔과 무늬가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이를 식물성 가죽이라 부르는데, 초식동물의 가죽 또한 그들이 뜯어먹은 풀을 장 속의 미생물이 분해해서 영양분을 공급하는 덕분에 만들어지는 것임을 생각하면 동물성과 식물성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작가가 만든 가죽들은 사슴가죽의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사슴을 애도하고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공-영혼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가죽이다.
동물과 식물이 지구에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 지구를 만들어온 박테리아와 곰팡이의 신체에는 오랜 세월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온 앎이 체현되어 있다. 우리는 앎이란 삶을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지만 박테리아와 곰팡이들에게 앎과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 누구와 친하게 지내고 무엇을 멀리할 것인지와 같은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마음이 있는(mindful) 신체를 가지고 있다. 마음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필멸의 신체들은 모두 마음이 있다. 마음이 있어야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먹고 놀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너를 삼키고>는 이들 마음이 있는 미생물 신체들의 움직임을 담았다. 그들은 서로를 먹고 싸우고 놀고 춤춘다.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을 삼켜버리는 먹기에서 “낯선 자의 친밀성”을 포착한다.5) 서로 현저하게 다른 것들이 먹기의 실패인 소화불량을 통해 친밀한 관계로 변했다는 것이 마굴리스의 ‘공생발생’ 가설이다. DNA를 분석해 보면 포유류인 우리 몸을 구성하는 것은 방대한 종류의 미생물들이다. 작가는 죽은 사슴의 몸, 그 상실에 대한 애도로부터 그 몸이 단일한 개체가 아니었음을, 그 사슴과 자신이 광대한 미생물들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음를 알아차린다.
생물의 분류체계는 일차적으로 시각에 기반한다. 종(species)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specere는 “보다”라는 뜻이다. 시각은 차이를 식별하는 특권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전자 분석법이 나오기 전까지, 18세기 유럽의 칼 폰 린네의 분류법에서 20세기의 휘태거의 5계 분류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시각을 통한 비교분류법이다. 린네는 자연을 식물, 동물, 광물로 분류했고, 곰팡이와 미생물을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술을 발효시키고, 치즈와 장을 만드는 여성들에게는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곰팡이의 기묘한 특성은 유용한 지식으로 엄마로부터 딸에게로 대대로 전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식은 부엌의 경계를 넘지 못했다. 무엇이 지식인가를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학식있는 남성들의 눈에 미생물은 다 똑같이 보이는 작은벌레에 불과했을 것이다. 곰팡이가 독립적인 분류군으로 등장한 것은 전자투과현미경이 상용화되고 나서다. 광학현미경보다 5천배나 높은 배율 덕분에 식물도, 동물도 아닌 곰팡이가 독립적인 분류군인 균계(fungi kingdom)로 명명되었다. 균계는 너무도 광대해서 90%이상이 알려지지 않은 암흑곰팡이다.
작가는 자신과 함께 작업한 곰팡이들에 대한 사변적인 분류목록을 작성한다. 분류는 세상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동일성과 차이를 인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왜 언제나 비교해부학적 기준이어야 하는가?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간만이 아닌 필멸의 존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파악할 것이고, 그 기준은 수만 가지에 이를 것이다. <균류식물혼합동물사전 I>은 세상을 파악하는 흥미로운 예시다. 가령, 배양한지 69일된 7세대의 [F02]로즈마리의 색깔은 좀사마귀의 머리, 활짝 핀 목화열매, 그리고 방해석과 같은 카테고리다. 지구상의 어떤 존재들, 가령 변색동물들은 이런 분류법을 이미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균류식물혼합동물사전 II>의 분류법은 더욱 흥미롭다. 작가가 제시하는 분류법의 기준점은 개별 생물종의 특성이 아니라 반려종(companion species)의 “존재론적 안무”6) 이다. 가령, ’제비둘기목‘은 비둘기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제비”에서 왔다. 그러나 작가는 이 모든 균과 박테리아가 동물과 공유하고 있는 것임을 동물을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표현한다. 별빛제비둘기는 “사과와 체리즙을 좋아하는 미생물이 편백나무 차를 먹고 공중제비를 하는 듯한 표면”을 가지고 “별이 폭발하는 듯한 지름 1cm 정도의 가스배출 흔적”을 가진 것이 특징이고, 용제비둘기는 “자스민즙을 좋아하는 미생물이 로즈힙즙을 먹고 승천하는 용처럼 공중제비하는 표면무늬”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미생물은 한 종이 아니고 사과와 체리즙, 편백나무차 자스민즙, 로즈힙즙 등 입맛이 비슷한 균류와 박테리아 공생체다. 그들 미생물반려들의 움직임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탄생일에서부터 성장기간 동안 외부적 조건이 만드는 존재론적 안무에 따라 그들은 공중제비 춤을 춘 것이다. 작가는 이를 절묘하게 포착하고 새로운 분류법을 창안한다.
<기억극장:그리스로마신화, 기억극장: 미생물편I,II>은 인류의 모든 지식을 저장하고 그 지식들 사이의 유기적 연관을 하나의 거대한 우주론으로 표현하려 했던 16세기 이탈리아의 사상가 길리오 카밀로의 <기억극장>에 관한 상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카밀로의 기억극장은 모형이 전시되기는 했지만 완성되지는 못했고, 그 아이디어만 책으로 남아있다. 작가는 카밀로의 <기억극장>에 미생물을 더한다. 이는 카밀로의 <기억극장>에는 없던 지식이다. 미생물을 최초로 관찰한 사람은 카밀로보다 한 세기가 더 지난 17세기의 비단 상인이자 현미경 발명가인 안톤 반 리우벤후크다. 그는 자기 뺨 안쪽을 긁어내어 자신이 만든 저배율의 현미경으로 작고 꼬물거리는 벌레들을 관찰하고 애니멀큘레(작은 동물)라고 명명했다. 기술은 투과전자현미경을 거쳐서 DNA를 빠르게 분석하는 PCR기법까지 빠르게 진화해서 광대한 미생물의 세계를 드러내어 주고 있다. 최신의 생물학에 의하면 지구의 대부분,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엄청난 미생물들이다. 최신의 생물학에 의해 개체라는 개념이 너덜너덜해지는 중이다. 지식체계의 대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기억극장>은 21세기 버전이다.
작가는 카밀로의 <기억극장>의 구도를 유지한 채, 미생물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위트있게 들이민다. 7번째 마지막 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 옆에 작가는 탄저균을 슬그머니 놓는다. 프로메테우스와 탄저균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려 했다면 탄저균은 동물의 몸에서 인간의 몸으로 그 자신을 옮긴다. 또 탄저균의 종명 안트라키스(anthracis)의 어원은 숯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낱말 anthrakis (ἄνθραξ)에서 나왔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태운 나무인 셈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좋은 것만 만든 것이 아니다. 생화학무기로 가장 많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 탄저균이기도 하다. 머큐리의 날개 달린 샌들 옆에 놓인 플라스티스페어(plastisphere)는 플래스틱 해양쓰레기안의 미생물 공동체다. 날개 날린 샌들이 유연하게 길을 내듯이 이 미생물공동체는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손상된 바다에서도 삶의 기술을 유연하게 창안한다.
이렇게 작가가 추가한 미생물들에 관한 텍스트들을 보고 있으면 카밀로의 <기억의 극장>이 질서정연한 7X7의 정형화된 공간적 구조물이 꿈틀꿈틀거리는 다양체가 되는 것 같다. 그는 전혀 그 구조를 변경시키지 않았음에도 미생물들이 그렇게 하는 것 같다. 미생물들이란 연결의 달인들이고 차이는 연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슴의 영혼이 작가를 사슴의 죽음과 상업적 이용을 추적하게 하고, 미생물과의 합작품인 가죽을 만들고,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만든 인간의 문명 아래에 광대한 미생물의 세계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작가에게 사슴의 영혼은 필립 풀먼의 『황금 나침반』에 나오는 다이몬인 것 같다. 이들의 결합은 공-영혼발생적이다. 소보람작가의 작업이 계속 기대되는 이유이다.
필자소개
최유미: 독립연구자. 지식공동체 <수유너머 파랑>에서 철학과 과학학,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강의하고, 99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 나무> 연구위원이다. 지은 책으로는 『지구의 철학』(공저),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감응의 유물론과 예술』(공저)이 있고 도나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 하기》, 《종과 종이 만날 때》를 번역했다.
1) 올슨 스콧 카드, 『사자의 대변인I,II』, 장미란 옮김, 시공사, 2000
2)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3) Deborah Bird Rose, Reports from a Wild Country:Ethics for Decolonisation, 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Press, 2004
4) SCOBY는 Symbiotoc Culture Of Bacteria and Yeast의 머릿글자이다.
5)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옮김, 마농지, 2021, 109쪽
6) 도나 해러웨이, 『종과 종이 만날 때』, 최유미옮김, 갈무리, 2022, 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