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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공성 물질전환 I: 이산화탄소 저장소

라베끄 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 라 투 드 페, 스위스, 2022

 

 그리하여 모든 것은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모든 것에는 피가 조금밖에 없는

살로 된 관들이 몸의 맨 끝까지 뻗어 있으며,

그것들의 입구에, 촘촘히 모여 있는 구멍들은 피부(혹은 코)의 끝 부분을 향해

쭉 뻗쳐있네.

엠페도클레스의 호흡론 중 '단편 100' (딜스-클란츠)

태양이 사슴의 뿔 위에서 하늘로 위치를 옮기고, 그 뒤를 지옥 신이 추격하며, 지옥 신이 사슴을 따라잡는 낮의 마지막 시점에 일몰이 생기고 이로 인해 밤이 온다는 고대의 신화가 있다.*  빛과 어두움의 불변하는 관계에서 매개의 생물체로 등장하는 사슴, 살아있는 살과 뼈, 땅에서 수면 아래 심연으로 추락하고, 어둠을 머금고 있다가 이윽고 빛과 함께 부활하는 사슴은 최근 작업 과정에서 주요 모티브가 되어왔다. 

 

나의 계획은 물의 심연에서 머무는 신화적 사슴을 레지던시 건물 앞에 펼쳐진 레만 호수의 산소순환 작용과의 관계 안에서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로잔 공과대학 EFPL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레만 호수는 일 년에 한번, 추운 겨울, 물의 층위가 뒤집어진다. 이때, 수면 위에 머물던 산소가 가장 깊은 물 속까지 이동하는데, 이 작용으로 호수의 가장 아랫면에서 살아가는 생물도 산소를 공급받게 된다. 하지만 21세기의 끝자락에는, 기후변화로 호수의 산소공급량이 8퍼센트 줄어들고, 가장 깊은 층의 저산소 지대는 25퍼센트 늘어나게 된다.**  불온한 미래의 장소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호흡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하게 되면, 들숨과 날숨의 리듬이 흐트러진다. 이때, 산소가 부족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들숨을 과도하게 시도하게 되는데 그러면 호흡은 더욱 가빠진다. 나는 이 과호흡증후군의 신체적, 정신적 감각의 기억을 인위적으로 불러와 나의 몸을 통해 호수의 심연으로 하강해보고자 했다. 체내 산소포화도 센서와 기계음을 연결하여 몸에서 산소가 1프로 줄어들 때마다 음의 간격이 줄어들도록 프로그래밍하고, 호흡을 조절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목이 따끔거리고 손가락 끝이 저릿해질 때까지 호흡을 멈추어도, 산소포화도는 3퍼센트 이상 감소하지 않았다. 

 

다공성 물질 전환: 이산화탄소 저장소는 이 실패한 호흡 연습과 호수 주변에서 프로타주 기법으로 베껴온 암석의 표면을 공간으로 배치하고, 가상의 저산소 지대를 구성한다. 미끌거리는 붉은 공간은 산화된 암석으로 구성된 물의 심연을 암시하고, 불온한 미래에 예견된 죽음을 알리는 경고장치로 제안된다. 반사하는 바닥의 표면 사이에 작은 틈, 그 안에 숨어있는 공기 방울이 빛과 신체접촉을 통해 왜곡되어 사방의 벽면으로 투사되고, 사슴의 분신, 인공의 생물체 C-Flex(Carbon dioxide flexioni)가 탄생한다.

*아리엘 골란, 세계의 모든 문양, p.163, 2004, 푸른역사

**Robert Vincent SCHWEFEL, Oxygen depletion in Lake Geneva,                  

p.116, 2017, ÉCOLE POLYTECHNIQUE FÉDÉRALE DE LAUS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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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공성 물질전환 II: C-Flex 인큐베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레지던시 결과 보고전

지구생존가이드: 포스트 휴먼, 광주, 한국, 2022

 

다공성 물질 전환 : C-Flex 인큐베이터는 홍차 발효실험을 통해 생분해되는 식물성 가죽의 생성과 풍화, 보존 과정을 연구하고, 이를 신체와의 관계에서 연결시키는 시청각적 작업이다. 작가는 35억 년 전 산소가 없던 원시 지구에서 남조류가 발생시킨 산소로 인해 멸절한 최초의 유기체이자 이름 없는 미생물을 소환하고, 미생물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이 아닐까?’ 질문하며 발효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리, 냄새, 형태, 질감과 색깔 등을 통해 물질의 화학적 진화와 소멸과정을 사유한다. 작품 제목의 C-Flex(Carbonii dioxidum Flexioni)는 이산화탄소의 굴절이라는 의미로, 작가가 탄소 배출로 인해 산소가 줄어드는 미래의 지구 환경에서도 생명은 다시 출현할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명명한 것이다. 작업에 사용한 수조 장치는 아이를 성장시키는 의료용 인큐베이터에서 착안한 것으로, 박테리아의 생애주기에 따라 변화하는 산소, 이산화탄소, 메탄, 온도, 습도 수치를 측정하기 위한 실험 도구이자 변화하는 지구환경을 상징하는 작은 세계이다. 수조에 부착된 녹음 장치와 스크린에 연결된 현미경을 통해 박테리아 단계에서 살,피부,확장된 신체로 나아가는 과정을 살피며, 성장과정의 C-Flex와 함께 호흡하는 일시적 경험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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